적응도 지표로서의 뇌

적응도 지표로서의 . 제프리 밀러가 고삐 풀린 뇌 가설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

… 이 이론(고삐 풀린 뇌)에는 두 가지 결함이 있었다. … 그런데 이 결함들을 해결해주는 또 하나의 이론이 있다. 바로 인간의 독특한 능력들이 성선택을 통해 적응도 지표로서 진화했다고 보는 이론이다.

이것을 고삐 풀린 뇌 이론에 빗대어 ‘건강한 뇌 이론’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건강한 뇌 이론에 따르면 이렇다. 인간의 뇌가 다른 유인원들의 뇌와 달리 사치스럽게 커진 이유는 이런 뇌가 생존이나 자식 양육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유전자가 얼마나 뛰어난지를 선전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뇌는 복잡해질수록 고장 나기 쉽다. 인간의 뇌는 너무나 복잡해서 돌연변이에 의해 쉽게 손상을 입는다. 또 이렇게 커다란 뇌는 생리적으로 사치다. 사치스럽고 복잡한 뇌만이 감당할 수 있는 언어와 예술 같은 행동을 통해 우리는 잠재적 짝에게 적응도를 과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성선택이 짝짓기에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마음을 좋아했다면, 우리의 창조적 지능은 생존이익 때문에 진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동을 할 때 돌연변이가 쉽게 노출되도록 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다. …

우리 종은 복잡한 행동이 훌륭한 적응도 지표 구실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최초의 종이 아니었다. 울새는 복잡하고 아름다운 멜로디의 노래를 반복해서 부름으로써 자신의 적응도를 드러낸다. 초파리는 상대방 앞에서 춤을 춤으로써 자신이 지닌 유전자의 품질을 선전한다. 정자새는 커다란 짝짓기 둥지를 짓고 꽃과 과일, 조개껍데기, 나비의 날개로 장식함으로써 자신의 우수함을 과시한다. 사실 많은 종들이 구애 행위를 적응도 지표로 이용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의 구애행위는 다른 종에 비해 마음을 훨씬 많이 드러낸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미술은 시각적인 미의식을 드러내고, 대화는 성격과 지능을 드러낸다. 인류는 자신의 적응도를 선전할 수단으로 뇌를 열어 보임으로써 관대함이나 창의력 같은 신종 적응도 지표들을 무더기로 발견했다. …

마음을 적응도 지표로 보는 아이디어는 진화심리학의 중요한 허점을 매워준다. 신체의 적응도 지표들은 성선택론의 정설로 받아들여져 이미 모든 훌륭한 진화론 교과서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

하지만 진화심리학은 우리의 수많은 심리적 형질들이 적응도지표로서 진화했을 가능성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스티븐 핑커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데이비드 버스의 마음의 기원 등 진화심리학의 주요한 저작들도 적응도 지표 이론을 다루지 않았다. 이런 저작들은 자연선택을 토대로 대부분의 마음의 적응들을 설명하고 있다. —p163-166, The mating mind

인간의 마음이 적응도 지표 다발로 진화했다는 아이디어가 비도덕적으로 취급되는 이유:

인간의 마음이 적응도 지표 다발로 진화했다는 아이디어는 인간 본성과 사회에 대한 오늘날의 견해들과 별로 사이가 좋지 않다. 사실 이 아이디어는 현대사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최소한 8가지의 핵심 가치들을 거스르고 있다.

  1. 적응도 상의 변이는 인간 평등에 대한 믿음을 거스른다(See 불평등에 대한 두려움).
  2. 적응도의 유전성은 사회적 환경과 가정 환경이 인간 발달의 대부분을 결정한다는 가정을 거스른다(See 결정론에 대한 두려움).
  3. 적응도의 요란한 과시는 겸손함, 예의바람, 미적 기준에 대한 가치를 위반한다.
  4. 적응도에 근거한 성적 지위의 위계는 평등한 사회조직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거스른다.
  5. 상대의 적응도를 평가하여 짝을 고른다는 주장은 천생연분에 대한 로맨틱한 이상을 거스른다.
  6. 핸디캡 원리에 의한 과도한 낭비는 절약, 검소, 효율성의 가치를 거스른다.
  7. 적응도 지표에 의해 인간을 판단하는 짝 고르기 메커니즘은 인간을 유전자의 질이 아니라 됨됨이로 평가해야 한다는 믿음을 거스른다.
  8. 언어, 음악, 미술 등의 능력들이 단지 ‘나는 적응도가 높고 내 유전자는 훌륭하니 나와 짝짓기 하자’라는 수천 세대 동안 요란스럽고 변함없이 되풀이되어 온 하나의 메시지를 떠벌이기 위해 진화했다는 주장은 너무나 허망하다(See 허무주의에 대한 두려움).

하나의 생물학적 개념이 이토록 많은 우리의 근본적인 가치들을 모욕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과학의 아이디어 하나가 이토록 일관되게 잘못된 이념을 지향할 수 있을까? 나는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인간의 규범들과 가치들이 이렇게 바람직하지 못한 자연적 행동 패턴에 대한 반발로서 발달했다고 생각해보자. 인간의 많은 행동들은 적응도를 과시하는 것이고, 이런 행동들은 타인에게 사회적 비용을 짐 지우며, 도덕적 규범들은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발달한다면, 많은 도덕적 규범들은 적응도 지표의 남용을 직접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겸손을 가치있게 생각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적응도 지표를 지나치게 뽐냄으로써 품위 있는 대화를 방해하는 허풍선이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절약을 가치있게 여기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사치스러운 겉치레 때문에 쪼들리며 살아가고, 또 남들이 필요로 하는 한정된 자원을 낭비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등을 가치 있게 여기는 이유는 권력과 일부다처제에 눈독을 들이는 전제군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규범들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들이 아니다. 그것은 도덕적 본능이자 문화 발명품으로서 지나친 성적 과시와 성 경쟁을 막기 위해 생겼다. —p209-211, The mating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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